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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의 삶(1): 헛된 수고 관리자 (joyhill)
2016년 11월 27일 16시 05분 01초 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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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6년 11월 27일 16시 05분 01초









해 아래의 삶(1): 헛된 수고

전도서 1:1-11

찬송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 인간사의 헛됨을 노래하는 전도자는 누구입니까? (1절)

표제에서는 히브리 시가서의 전통에 따라 저자와 배경, 장르를 소개한다. 저자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도자’라는 직책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신분을 암시하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다. ‘전도자’(코헬렛)는 보통 대중 연설자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회중을 모아 (카할) 그들에게 지혜를 전하는 지혜자 혹은 설교자’로 그려진다. 전통적으로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을 저자로 보지만, 표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솔로몬이 암시되지 않는다.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열왕기상 4:29-34이나 그의 생애와 유사한 전도서 2:3-11 등은 솔로몬을 저자로 지지한다. 잠언(1:10)과 아가(아 1:1)에서는 솔로몬의 이름이 직접 명시되지만, 전도서에는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2) 전도자는 헛됨의 전제이자 하나님 없는 인간의 영역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3절)

전도자의 초성은 ‘헛됨’이다(2절). 전도서 본론의 시작과 마지막도 ‘헛됨’(1:2; 12:8)이다. 2절은 전도서 전체 주제를 드러내는 구절이다. 전도자는 하나도 예외 없이 모든 것(일)이 헛되다고 말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절대 허무’를 선언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해 아래서’ 그렇다는 것이다. 본서에만 29회 등장하는 ‘해 아래’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라는 의미와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중의적인 기능”을 갖는다. 더 나아가 ‘해 위’와 대비되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영역’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 없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곳에서는 공허와 허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보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 삶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해 아래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있다. ‘해 아래’에서는 절대적인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는 뜻이다.

 

 

● 나눔 1

- 전도자는 해 아래 삶의 한계를 지적하며 모든 것을 ‘상대화’합니다. ‘헛되다’는 것은 ‘거

짓된 것’이라기보다 ‘일시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이 절대시하거나 우상화하

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도 함께 말해봅시다.

 

 

 

3) 전도자가 ‘해 아래 삶의 헛됨’을 인간의 삶에서 얻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3, 4절)

전도자는 왜 해 아래 삶이 헛되다고 하는지 여러 증거를 제시한다. 그중에서 첫째는 ‘인간의 삶’에서 얻은 증거다. 전도자는 인간이 행하는 ‘수고의 헛됨’을 예로 든다. 여기에서 ‘수고’는 ‘고난, 힘든 노동, 괴로움’이라는 뜻도 있지만 1:4-12:7까지 사용된 용례를 볼 때 ‘괴롭히는 그 자체’보다는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해 계속되는 노력 행위’를 가리킨다. 그 ‘수고의 헛됨’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수고한 대로 유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고의 노력이 보답을 받지 못하고 수확의 기쁨이 흘린 땀에 비례하지 않을 때 사람은 낙망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또 다른 양상은 아무리 수고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수고의 결과는 사라지고 그 수고(사람)도 잊힌다는 것이다. 이처럼 땅은 영구하지만, 사람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쉼 없이 수고하다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4) 전도자가 자연에서 얻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5-7절)

해 아래 삶의 헛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자연’이다. 땅(4절)에 이어 해, 바람, 강물의 순환을 그 예로 제시한다. 매일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이리저리 불고 또 불어도 결국 제자리도 돌아간다. 돌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반복이다. 자연의 순환은 ‘한 번’ 왔다가 떠나는 인간의 짧은 일생과 비교된다.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진전도 변화도 없이 무의미한 되풀이처럼 보이는 인간의 일상과 닮아 있다. 5,6절에서 ‘돌아가다’라는 말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했다면, 7,8절에서는 ‘채우다(족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모든 강물이 바다를 향해 쉴 새 없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바다는 결코 차지 않는다. 인생의 수고와 욕망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수고하고 애써도, 얻고 쌓아도 참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 눈은 족함이 없고 귀는 차지 않는다. 해 아래 있는 그 무엇으로도 인생의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5) 전도자가 역사에서 얻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9-11절)

해 아래 삶의 헛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자연’이다. 땅(4절)에 이어 해, 바람, 강물의 순환을 그 예로 제시한다. 매일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이리저리 불고 또 불어도 결국 제자리도 돌아간다. 돌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반복이다. 자연의 순환은 ‘한 번’ 왔다가 떠나는 인간의 짧은 일생과 비교된다.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진전도 변화도 없이 무의미한 되풀이처럼 보이는 인간의 일상과 닮아 있다. 5,6절에서 ‘돌아가다’라는 말이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했다면, 7,8절에서는 ‘채우다(족하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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