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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가 지닌 한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14-17절).
1) 전도자가 목격한 또 하나의 ‘모순된 현실’은 무엇입니까?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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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10절에서 다룬 문제를 다시 제시하지만, ‘악인의 형통’이라는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룬다. 악인과 의인의 ‘뒤바뀐 운명’이다. 이것은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시 62:12)는 진리와 너무 거리가 멀다. 악인의 보응과 의인의 보상이 부당하게 뒤집힌 것이다. 율법에 명시된 인과응보의 원리가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이라는 이 현실을 전도자는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정의가 사라지고, 의와 악에 대한 보응이 서로 뒤바뀐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해 아래 인간이 처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다. 세상이 그런 곳인 줄 아는 데서 공감하는 절망과 극복하는 희망이 태어난다. |
4) 헛된 세상 속에서 전도자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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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분노하거나 체념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리고 인생에게 고통을 주는 악들도 있지만 창조주가 주는 평범한 삶의 행복도 있으니 그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참 지혜라고 말한다. 오늘 기회가 있을 때 허락된 분복을 잘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한 가치는 없다고 일깨워준다. 이것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해 아래서는 일리가 있는 현실주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공의로운 판단을 믿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한 모순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뛰어넘는 질서”는 없다. 모순된 세상에서도 작은 일상에 만족하고 하나님이 주신 수고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신자의 삶이다. |
5)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살펴보지만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합니까? (17절)
전도자는 해 아래 일어나는 일을 인간이 다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인생은 부조리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현실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 현실과 상충되어 보이는 하나님의 공의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인간 지혜의 한계는 전도자를 허무하게 하고 분하게 만든다. 이것은 지혜를 추구하는 노력의 헛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옳다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버리라는 뜻이다. 다 모르고,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간격을 인정하지 않는 무례함을 어서 버리라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인정,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참 지혜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 나눔 2 -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참 지혜를 구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다 안다는 오만함이나 절반의 진리에 만족하는 나태함, 새로운 진리에서 뒷걸음치려는 소심함 중 요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