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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의 삶(3): 지혜의 한계 관리자 (joyhill)
2016년 12월 11일 16시 06분 06초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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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6년 12월 11일 16시 06분 06초









 

 

 

12월 셋째 주

해 아래의 삶(3): 지혜의 한계

전도서 8:9-17

찬송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권력의 억압(1-8절)에 이어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두 가지 악의 문제, 즉 ‘세상에 만연한 불공정, 인간의 무지’에 대해 다룹니다. 에덴의 사람들처럼, 다 알려고 하거나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몰락의 원인입니다.

 

 


1. 전도자는 자신의 기대와 다른 부조리한 현실을 보며 탄식합니다(9-13절).

1) 전도자가 주의 깊게 살핀 ‘부조리한 질서’는 무엇입니까? (9절)

8장은 전도자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모순된 현실 즉 인생을 고통스럽게 하는 세 가지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력이라는 억압(1-9절), 세상에 만연한 불공정(10-14절),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인간의 무지(16,17절)다. 그 부조리 중 대표적인 사례가 ‘학대와 차별’이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여 압제하고 학대하는 ‘부조리한 질서’는 악이다. 이것은 폭군에 의한 폭정일 수 있고, 사회에 만연한 부당한 억압과 착취의 구조일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이 오랠수록 인간 권력에 대한 불신은 물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의문은 커지고 인생의 허무는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전도자는 이런 부당한 권세(구조)의 억압 앞에 굴복하고 도피하고 무조건 반항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극단적이거나 충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보다 때와 과정을 분별하여 행하는 것이 그 악을 이기는 지혜라고 말한다.

2)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1절)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전도자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악의 문제’다. 악이 창궐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악에 대한 심판이 속히 시행되지 않은 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뇌한다. 그렇게 악을 행하고도 합당한 보응은커녕 평안하게 죽고 명예롭게 안장되는 부조리한 현실은 그를 당혹하게 한다. 전도자가 “경험하는 현실과 기대하는 심판 원리(공의)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다. 공정을 위해 법이 마련되어 있지만 법 집행마저 불공정한 현실을 보며 절망한다. 도리어 악이 속히 징벌 받지 않는 부조리한 질서 때문에 악인들은 더 담대히 악을 저지른다. 하지만 처벌이 없다고 해서 저지른 죄마저 무마되는 것은 아니다. 지연된 심판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묵인이나 용인은 아니다. 그러니 이 불편한 현실을 수용하되, 하나님 경외를 잃지 말아야 한다.

 

● 나눔1 - 심판의 지연은 하나님의 부재나 무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에 대한 보상이나 악에 대한 보응이 때로 더디게 시행되는 이유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봅시다.


 

2.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가 지닌 한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14-17절).

1) 전도자가 목격한 또 하나의 ‘모순된 현실’은 무엇입니까? (14절)

전도자는 10절에서 다룬 문제를 다시 제시하지만, ‘악인의 형통’이라는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룬다. 악인과 의인의 ‘뒤바뀐 운명’이다. 이것은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시 62:12)는 진리와 너무 거리가 멀다. 악인의 보응과 의인의 보상이 부당하게 뒤집힌 것이다. 율법에 명시된 인과응보의 원리가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이라는 이 현실을 전도자는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정의가 사라지고, 의와 악에 대한 보응이 서로 뒤바뀐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해 아래 인간이 처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다. 세상이 그런 곳인 줄 아는 데서 공감하는 절망과 극복하는 희망이 태어난다.

 

 

 

4) 헛된 세상 속에서 전도자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15절)

전도자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 분노하거나 체념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리고 인생에게 고통을 주는 악들도 있지만 창조주가 주는 평범한 삶의 행복도 있으니 그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참 지혜라고 말한다. 오늘 기회가 있을 때 허락된 분복을 잘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한 가치는 없다고 일깨워준다. 이것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해 아래서는 일리가 있는 현실주의”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공의로운 판단을 믿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한 모순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뛰어넘는 질서”는 없다. 모순된 세상에서도 작은 일상에 만족하고 하나님이 주신 수고의 기쁨을 놓치지 않고 누리는 것이 지혜로운 신자의 삶이다.

 

 

5)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살펴보지만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합니까? (17절)

전도자는 해 아래 일어나는 일을 인간이 다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인생은 부조리하고 모순되어 보이는 현실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 현실과 상충되어 보이는 하나님의 공의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인간 지혜의 한계는 전도자를 허무하게 하고 분하게 만든다. 이것은 지혜를 추구하는 노력의 헛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옳다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버리라는 뜻이다. 다 모르고,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간격을 인정하지 않는 무례함을 어서 버리라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인정,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참 지혜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 나눔 2 -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참 지혜를 구하는 자의 태도입니다. 다 안다는 오만함이나 절반의 진리에 만족하는 나태함, 새로운 진리에서 뒷걸음치려는 소심함 중 요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두고 현실을 사는 것이 참 지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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