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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아래의 삶(4): 생명의 한계
전도서 12:1-14
찬송 574장(구찬송 303장, 가슴마다 파도친다)
해 아래 인생은 허무합니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인생을 헛되게 보낼 수 없습니다. 전도서를 마무리하면서, 전도자는 쇠락과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환기시키며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그 명령에 순종할 것을 권고합니다.
말씀과 나눔
1. 전도자는 쇠락해가는 노년의 모습을 여러 비유를 통해 묘사합니다(1-8절).
1) 청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7절)
나를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이다.
전도자는 청춘(생명)을 시들게 하고 질식시키는 마음의 근심과 죄를 멀리하라고 경고했다. 동시에 청년의 때를 즐겁게 살되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권고했다(11:9, 10). 이어서 전도자는 ‘곤고한 날’ 즉 아무런 낙이 없고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인생의 주인을 인정하고 의식하라는 권고다. 영원할 것 같은 청년의 때도 덧없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먼 미래 같던 인생의 마지막 날도 가까이 있음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고 현실을 잘 즐기되, 언젠가 해 아래에서의 삶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헛된 세상이지만, 인생을 헛되게 살지는 않는 유일한 길이며, 경건한 노후와 영원한 사후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길이다.
2) 쇠락과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에 대한 전도자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8절)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다고 결론짓는다.
청년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육체는 세월과 함께 쇠약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흙으로 지어진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우리 영(靈)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전도자는 쇠약해져가는 육신의 모습을 기력이 소멸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소중하고 유용한 것들이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비유한다(3-6절). 그리고 이런 유한한 인생을 보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탄식한다. 본서의 서두(1:2)에서 시작한 말을 다시 반복한다. 이 구절이 전도서 전체의 결론인지 아니면 결론의 시작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9절에서 ‘그리고’로 시작하고, “인생의 허무를 깊이 있게 역설함으로써 오직 창조주만 바라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결론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인생의 헛됨을 인정하는 데서 소망이 시작되고, 그래야 영생과 하나님 나라가 피부에 와 닿는 참 소망이 될 것이다.
나눔1 누구도 쇠함과 죽음에 예외가 없습니다. 전도자가 묘사하는 ‘인생의 마지막 풍경’(1-7절)을 보며 각자 소회를 나눠봅시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내 삶에서 어떤 조정이 필요할까요?
2. 인생이 놓치기 쉬운 경고와 당부로 전도서를 마무리합니다(9-14절).
1)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11절)
찌르는 채찍과 잘 박힌 못에 비유한다.
전도자는 가축을 치는 도구를 비유로 지혜자의 교훈을 묘사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특성을 소개한다. 지혜자의 교훈(1:2-12:8)은 ‘찌르는 채찍’과 같다. ‘채찍’은 목자들이 가축을 몰 때 사용하는 막대기(삿 3:31)로, 특히 막대기 끝에 날카로운 것이 있어 고집스런 가축을 바른 길로 이끄는 데 유용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굳어지고 뒤틀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늘 자극하여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교정하고 인도한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은 ‘잘 박힌 못’이 되어야 한다. 바람에 장막이 날리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된 못처럼, 말씀이 우리 마음에 흔들림 없이 확실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처럼 채찍과 못은 “말로 하는 고통스런 교훈으로서 지혜의 학습자에게 방향을 재조정해주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2) 전도자가 마지막으로 일깨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12절)
많은 책을 짓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끝이 없고 몸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고 일깨운다.
‘내 아들아’는 지혜 문학에서 스승이 제자의 관심을 환기시킬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전도자의 교훈에 일종의 경고(12-14절)가 붙어 있다. 12절은 저술과 연구의 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옳은 말씀은 채찍 같더라도 수용하되, 그른 말씀이면 꿀처럼 달더라도 뱉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리를 왜곡하고 사람을 미혹케 하는 책들과 주장들이 끝도 없이 나올 것이고 그것을 다 추구하려다가는 몸과 마음이 피곤할 뿐이니 잘 분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해 아래서 그릇된 지식 추구가 주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지적한 것이다. 동시에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괴리’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삶이 수반되지 않은 앎은 우리를 더욱 무기력하게 한다. 실천되지 않은 지식은 내게 어떤 변화도, 주변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앎과 삶의 간극을 좁히라는 것이다.
3) 전도자의 마지막 당부는 무엇이며 그 권면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13, 14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이 선악 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해 아래서 모든 것이 헛되다(1:2, 12:8)고 거듭 말해 왔지만, 결코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헛된 세상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세상을 파고들어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발견하려는 열망”이 있을 뿐이다. 전도자가 발견한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탐색 끝에 얻은 결론”이자, 전도서 전체의 결론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잠언의 핵심 교훈(잠 1:7, 31:30)이자, 전도자가 말하는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답”이다(전 3:14;5:7;7:18;8:12). 하나님 경외는 하나님이 내 삶의 근원이요 모든 것(일)의 주권자임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고 삶의 태도다. 인생은 허무하고, 쇠약하다 죽으면 다 썩고 사라지고 잊힌다. 하지만 창조주가 계시고, 그분의 세계가 기다리고, 심판도 있다. 그러니 인생의 주인도, 인생의 본분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나눔2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헛된 세상에서 헛되게 살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이자 ‘인간의 본분’(전 12:13)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내 신앙과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이야기해봅시다.
함께 기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인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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